이것저것2013.12.06 22:22

언제나처럼 또 낯선 곳으로 출근했다. 다들 어제 늦게까지 일했는지 책상 의자는 주인이 없는 상태다. 그 공간의 몇 안 되는 누군가에게 내 자리를 묻고 앉아 내게 맞는 작업환경을 만들기 시작한다.


한참 작업 준비를 하고 있는데 처음 보는 멀쑥하게 키 큰 남자가 옆 파트에 출근을 한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일하는 날이 많은지라 내겐 새로운 사람은 새로운 사람이 아니다. 그냥 지나치는 사람 정도랄까? (나중에 알고 보니 키 큰 남자는 프레젠테이션 디자인 팀이었다.)


다음 날이었나 다다음 날이었나 그 키 큰 남자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걸어온다. 프레젠테이션 작업에 대한 얘기이겠거니 하고 그의 말을 기다리는데..............................




"저... 혹시 ‘시선과느낌’ 블로그 운영하시는 분 아닌가요?"라고 한다. ‘이 상황은 뭐지?’ 라는 생각과 "예. 맞아요."라는 말이 동시에 나온다. 그는 예전 블로그에 올렸던 내 프로필 사진을 봤나보다.

내 대답을 그는 무척 반기더니 “혹시나 했는데 맞군요! 블로그 무척 잘 보고 있습니다. 블로그 보며 대단한 분이라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무척 반갑네요.”라고 한다. 내가 올린 ‘일러스트레이터 강좌’를 봤었나보다.


난 낯선 상황을 어찌 해야 할지 몰라하며, 그의 얼굴을 슬쩍 슬쩍 쳐다보며 감사하단 말만 반복한다. 그의 기뻐하는 반응과 그 반응을 받아들이는 내 반응이 잘 어울리지 않아, 대화는 길게 이어지지 못하고 멋쩍어하며 서로의 일과로 돌아간다. 내 옆 10미터 정도 떨어진 그의 위치가 신경 쓰이기 시작한다.


첫날이라 작업할 게 많지 않아 먼저 퇴근하며, 신경 쓰이던 그에게 호의의 표시로 웃음 섞인 인사를 건넨다. 퇴근길 위에서 낯선 생각들이 머리에 들어찬다. ‘날 대단하게 봤다던 그 사람에게 실제로 보이는 나란 사람은 어떨까?’, ‘실망스러운 모습이면 어쩌지?’, 

‘멋진 모습으로 보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등등등.....


다행히도 낯선 고민은 오래가지 않는다. 고민이 해결된 건 아니고 일하느라 멋져 보일(?) 겨를도 없었다. (다행이다.^^;) 그와 공유할 시간이 없었던 그 공간에서 별 느낌 없이 그를 몇 번 지나치며 작업일정은 마무리됐다. 집으로 향하기 위해 짐을 꾸리고 나오려는데 그가 악수를 청해온다. 손에 땀이 있었던지 바지에 손을 쓱쓱 닦은 후에 말이다. ‘연락처라도 주고받을까?’란 생각과 가방에 있는 ‘명함’을 떠올렸으나 그와 기분 좋은 인사만을 나누고 헤어졌다. 그의 악수 덕분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평소보다 좋다.


누군가 날 알아주는 것은 기분 좋고 감사할 일이다. 하지만 그 어색한 상황을 내 성격은 반기지 못한다.


4년간 블로그를 운영해 왔다. 참 많은 시간을 그 공간에서 보냈다. 잘했건 못했건 그 곳에서의 시간을 만족한다. 공간이라 할 수 없는 그 곳을 좋아하는 한 사람도 만났다. 지금도 그곳에서 보낼 시간을 얻기 위해 사진도 찍고 글도 긁적여 본다. 아직 먼 얘기지만 ‘은퇴 후 뭘 하지?’란 고민은 내겐 없을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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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시선과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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