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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앨범

즉흥적 나들이

by 시선과느낌 2013.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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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들어가니 집사람이 노트북으로 다운받은 TV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옷을 갈아입고 집사람 옆에 앉아 같이 보는데 등장인물 모두가 밥상 앞에 앉아 저마다의 것을 먹고 있다. 그 중 한 명이 불고기를 먹고 있는데, 꽤 두툼하다. 집사람이 “맛있겠다~ 먹고싶다~”한다. 고기도 잘 안 먹으면서 그러느냐고 하니, 그래도 맛있어 보인단다. 집사람은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남의 살을 씹는 거 같단다. 그래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긴 후론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나 : 저번에 나 회식했던 그 숯불고기집 있잖아. 지금 거기 갈까?

집사람 : 정말? 응. 가자!!!

나 : 정말 가고싶어?

집사람 : 응. 가고싶어.

 

때는 오후 6시 45분. 노트북으로 검색해보니 8시까지 운영한단다. 시간도 얼마 안 남고 우리 집과는 거리가 있어 안 되겠다 싶어 단념한다. 우리 집은 서울 은평구에 있고 가려하는 숯불고기집은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다. 서울을 가로질러 남양주시까지 가야한다. 집사람이 전화로 운영시간을 다시 확인한다. 정말 먹고 싶은가보다. 8시까지 주문하고 9시까지 먹을 수 있단다. 1시간 안에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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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서둘러~!”

 

집엔 갑작스런 목표로 활기가 생긴다. 대충 옷을 차려입고 나가려는데 아들에게서 ‘응가’ 냄새가 난다. 서둘러 아들 엉덩이를 씻기고 차를 타고 출발한다. 내비게이션에서의 도착시각은 7시 52분이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의 시간 계산은 믿을 게 못 된다. 시간오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평소보다 좀 서둘러(끼어들기, 과속, 신호위반) 운전한다. 만약 시간 안에 도착하지 못하면 그냥 드라이브한 것으로 치자고 우린 합의한다.

 

집사람은 서둘러 운전하는 내가 웃긴가 보다. 집사람의 말에 의하면, 나란 사람은 갑작스런 것을 싫어한다. 언제나 계획에 있는 것만 하려하고, 그 안에서 이탈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지금 생각해보니 ‘집사람이 나랑 살면서 좀 심심했겠다’ 싶다.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래전부터 이렇게 생겨 먹은 것을... 이 성격이 바뀔리도 만무하고...

흔치 않은 갑작스런 내 행동에 집사람은 즐거운가 보다. 집사람은 갑작으런 것을 좋아한다. 연애시절에도 ‘서프라이즈~’ 한 것을 좋아했다. 내가 잘 받아주지 못해서 좀 그랬었지만...

 

서울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곤 순조로운 운행이었다. 시간에 맞게 도착해 주문했다.

 

 

도착한 곳은 ‘덕소 숯불고기’ 집. 밥과 고기를 시키고, 난 “자기가 먹고 싶다고 해서 온 거니까 많이 먹어야 해”라고 한다.

 

아들은 숯불고기가 입맛에 맞지 않나 보다. 작은 고기 몇 점을 먹더니 입도 대지 않는다. 밥도 전혀 먹지 않고 식당 안을 돌아다니려고만 한다. 핸드폰의 재미있는 동영상도 아들을 잡아두지 못한다. 우리 부부의 느긋한 식사시간은 아직은 이른가 보다. 그래도 집사람은 남기지 않고 고기를 다 먹었다. 맛있다며^^

 

 

급하게 달려오던 관성이 남아있었던지 고기도 급하게 먹은 거 같다. 이날의 코스는 지난번 회식 코스를 그대로 답습했다.

다음 들린 곳은 ‘고당’. 한옥으로 지어진 커피점이다. 지난번 회식 때 고깃집 보다 더 마음에 들었던 곳이다. ‘다음에 집사람과 같이 와야지’ 하며 명함도 챙겨뒀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오게 됐다.

공중에 매달린 한지가 발라진 문, 비가 온다면 예쁘게 받아줄 처마, 처마 밑 고리에 앉아 있던 제비 등이 한옥의 고즈넉함을 살리며 대화를 더욱 즐겁게 만들었었다. 참 오랜만에 본 제비였는데 이날은 없었다. 이제는 떠날 계절인가보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근처 찐빵집에는 날 벌레들이 무척 많은데 이곳 ‘고당’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번에도 “커피 냄새를 싫어하나?”, “제비가 다 잡아먹나?” 하며 신기해 했다.

 

 

밥을 거의 먹지 않은 아들을 위해 근처에서 찐빵을 사왔다. 잘 먹는다. 찐빵을 베어먹은 자리가 둥글게 파이는 게 귀엽고 웃기다.

 

 

집사람은 유자에이드를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두 음료는 다른 커피점 보다 맛의 밀도가 높고 가격도 높다.

 

 

찐빵으로 배가 조금 부른 아들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찐빵은 아직 아들의 손에 들려있다. 가끔 걸려 넘어지려 할 때도, 먹는 것은 바닥에 닿으면 안 되는 것을 아는지 찐빵을 든 왼손은 바닥에 닿지 않는다.

 

 

오랜 시간 발로 다독여진 마루는 색상이 은근해 멋스럽다. 어릴적 무서운 할머니가 계셨던 외가의 마루가 이랬었다. 그곳에서 조그마했던 나는 찬물에 밥 말아 먹고 된장 찍은 고추를 참 맛나게 먹었었다. 이후 고추란 것을 그렇게 맛나게 먹었던 적은 군대 시절뿐인 거 같다. 외할머니의 한옥은 어떻게 됐을까. 갑자기 보고 싶다.

 

 

우리 품에서 떠나고 싶어하던 아들은 드디어 원하던 마당으로 나갔다. 왼손에 들려있는 식량을 조금씩 베어 물면서 저 마음 가는데로 간다. 흙길을 걷는 게, 바닥에 놓인 돌들을 징검다리 건너듯 하는 게 나름 재미있나 보다. 내가 부르는 소리에 이따금 반응하다가도 금방 저 가고 싶은 곳으로 다시 간다. 덕분에 난 ‘고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 아들은 피곤했는지 금세 잠든다. 집사람과 난 갑자기 생긴 4시간 정도를 돌아보며, 아들이 좀 더 크면 이러자 저러자 하며 미래에 있을 즐거운 나들이를 얘기한다. ‘서프라이즈’를 좋아하는 집사람을 위해 이따금 계획적으로 이렇게 나와야겠다.

 

 

 PS. 2013. 9. 27 

 

집사람이 '덕소숯불고기'가 생각난다 해서 저녁 시간에 갔다 왔다. 이번엔 '일산점'으로...

역시 본점은 본점인가보다. 일산점이 맛이 없지는 않았지만, 본점과는 맛과 신선도에서 차이가 있었다. 주로 상추쌈을 싸먹게 되는 음식인데 상추의 상태가 영 아니었다. 심하다 싶을 정도로... 이후론 본점에만 갈 생각이다.

 

 

 PS. 2015. 6. 22 


지난 토요일(2015. 6.13) ‘덕소 숯불고기’와 ‘고당’을 찾았다. 

‘덕소 숯불고기’ 에선 10분 정도의 대기 시간이 있었고 이용방법에 약간의 변화가 있을 뿐 맛은 여전했다. 밥을 잘 먹지 않는 아들도 이날은 어찌나 잘 먹던지.^^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고당’은 이제 그러지 못할 거 같다. 이유를 몇 가지 들자면

  • 야외의 좌석 수를 늘리려는 시도로 한옥의 여백이 없어졌고 그 여백을 채운 요소도 한옥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았다.
  • 커피를 마시면 보충(리필)이 가능했는데, 9시까지만 가능하단다. ‘보충은 9시까지만’이란 원칙이 전에도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전에는 직원이 돌아다니면서 “직원의 퇴근으로 보충이 안 될수 있으니 지금 보충을 받으시겠습니까?”라고 사전알림이 있었는데 이제 그러지 않는 거 같다. 알아서 챙기는 배려가 한 가지 없어진 거다.
  • 운영 시간이 새벽 3시까지 연장됐다. 그러면서 술도 같이 판매되는 거 같다. 술이 있다면 안주도 있을 텐데 커피를 마시는 옆에서 술과 안주라… 내 기억 속의 ‘고당’에선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다.
  • 커피를 마시는 공간에서 냉면(아니면 국수)도 같이 판매하는 거 같다. 커피집에서 냉면이라니…
    예전 어느 작은 동네 커피점에서 마른 멸치를 탁자에 널어놓은 것을 보곤 이용할 곳이 못 된다 싶어 그냥 나온 적이 있다. 커피에 대해 잘 모르시는 아주머니께서 혼자 운영하시니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나왔던 기억이다.
    ‘고당’에서의 ‘냉면’은 위의 동네 커피점의 ‘마른 멸치’와 비슷하단 생각이다.
  • 원래부터 고기를 주로 하는 식당이 옆에 같이 있었는데, 전에는 두 공간이 확실히 구분되는 느낌이었는데 이젠 두 공간이 섞이는 느낌이다. 그로 인해 커피점의 장점이 흐려지는 듯하다.


내 짐작엔 주인(또는 책임자)가 바뀌지 않았나 싶다. 그 책임자는 여러 것을 시도해 이윤을 높이고 싶은가 보다. 그러다 보니 이것도 붙이고 저것도 붙이고 해서 커피점이었던 고당은 커피점이 아니게 됐다.

 

다시 찾지 않을 곳은 아니나, 좋아하는 곳이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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