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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앨범

돌아다니다. (지난 이야기)

by 시선과느낌 2014.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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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잠시 접어두려고 영화관에 왔다. 직장생활 할 때는 퇴근하고 자주 들리던 대한극장이었는데 참 오랜만이다. 예전에 비해 변함 없는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 좋다. 

아직 직장인들이 일할 시간이어서 복잡하지 않아 이또한 좋다. 예매 후 남은 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커피점에 들러 책을 읽는데 시선은 책을 벗어나 창밖을 향하곤 한다. 시선을 책 위에 두려 노력 해보지만, 내용이 어려워 그런지 영…. 

책 읽기를 포기하고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밖의 전경은 책의 내용보다 훨씬 복잡하나 이해할 필요가 없기에 단순하게 느껴진다. 창밖엔 행인을 향해 다가서는 두 단체가 있다. 하나는 종교단체, 하나는 자원봉사 단체다. 자원봉사 단체의 현수막을 보니 독거노인의 무료 급식에 대한 서명을 받나 보다. 여자 둘, 남자 한 명이 뜨거운 볕 아래서 서명에 응해주기를 바라며 행인들에게 다가서지만 어디서나 그렇듯 서명에 응하는 이는 흔치 않다. '서명에 좀 응해주지….' 하며 계속 바라보는데 '보고 있는 나 또한 서명에 응할 수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며 '서명하러 가볼까?'란 생각이 든다. 응원의 마음으로 시원한 음료를 건네면 좋겠다 싶어 음료수를 세 병 구매했다. 

음료수병을 한 손에 달랑달랑 들고선 서명을 받는 여자분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다가선다. 여자분이 날 봤다. 날 본 순간 나를 향한 발걸음은 시작됐지만, 얼굴은 이해되지 않는 뭔가가 있어 멈칫하는 표정이다. 아마도 내가 음료를 건네기 전까진 이해되지 않는 뭔가가 뭔지 몰랐을 거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서명받는 자가 행인을 향해 다가서지, 행인이 서명받는 자에게 먼저 다가서진 않기 때문일 거다. (내 행동이 낯설었겠지만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길 바란다.) 

음료를 건네며 서명하러 왔다 하니 이 또한 반기기 이전에 상황판단 하는 눈치다. 이 또한 낯선 상황이니 자연스러운 반응. 봉사자에게서 서명을 원하는 이유와 설문조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설문지에 몇 가지 기재했다.

설문조사가 끝나니 독거노인들을 후원 해줄 수 있는지 물어온다. (설문조사 지면 옆엔 후원동의서가 있었다.) 한 지면에 설문조사와 후원동의서를 같이 실은 것은 후원 동의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영리한 방법이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의 패턴을 이용하는 영리하고 계산적인 행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나 자진해서 응한 나인지라 기꺼이 흐름을 타고 매월 후원하겠다 약속했다.

 

봉사자의 설명으로는 독거노인 한 끼 식사 비용이 500원 정도란다. 예상에서 너무나 동떨어진 비용에 그만 실소가 일었다. 어떻게 500원으로 한 끼 식사가 가능하냐 물으니 후원해주시는 분들과 연동되는 많은 단체로 인해 가능하단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500원이라니…. 그들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내가 그들에게 건넨 음료수는 세 끼 식사 5일분 정도가 되는 거다. 응원을 위한 음료수를 사든 내 손이 바보처럼 느껴진다.

 

 

영화는 재미있다가 갑작스러운 반전에 '이건 뭐지?' 하고 있는데 끝날 타이밍은 아닐 거라 생각되는 곳에서 끝나버렸다. 반전의 각도가 너무 급작스럽고 과격해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라 순간 멍했다.

영화관을 나온 후 1시간 거리에 있는 광화문의 순대국 집으로 향했다. 얼마전 우연하게 들러 바닥까지 싹싹비웠던 곳이다. 순댓국 집을 향하던 중 세월호 특별법 마련을 위한 서명을 받는 곳을 지나게 됐다. 서명은 당연히 했고 서명을 두 번 한 날이 됐다. 

뜬금 없다랄까? 갑자기 ‘서명받으려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뭘까?’ 생각해본다. 봐주고 손잡아 줬으면 하는데 우리가 그러질 않아서 봐달라고 손잡아 달라고 거리로 나온 것 아닐까. 거리에서 손잡아달라 다가오는 이를 보면 적극적으로 잡아볼까한다. 해보니 어렵지 않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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