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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앨범

신발

by 시선과느낌 2013. 1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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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등산하려고 상자에서 등산화를 꺼냈다. 조심해 열었는데도 상자에선 먼지가 날린다. 신발들이 담긴 상자들을 보는데 ‘이참에 신발 정리 좀 할까?’란 생각이 든다. 집에 있는 대부분의 신발 상자들은 집사람의 신발을 담고 있다. 아이가 생긴 후 신지 않고 있는 하이힐이 대부분일 것이다.

하이힐을 좋아하는 집사람과 달리,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녀의 하이힐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들의 하이힐을 보며 “이 신발 참 편해”하는 말은 남자들이 생각하는 그런 뜻이 아닌 듯하다. 그녀들의 “편해”란 말엔 다른 뜻이 내포된 듯하다. 어떤 좋은 뜻이 내포돼 있다 해도 난 집사람의 하이힐이 좋아질 거 같지 않다. 먼지야 먼지야 하이힐 상자에만 자꾸자꾸 쌓여라~~~

 

 

내겐 반짝이는 신발이 한 켤레 있다. 연애 시절 집사람이 권해준 그 신발은 밤무대 위에서나 어울릴 법한 화려함을 가지고 있다. 다들 그 신발을 보면 클럽에 가느냐고들 한다. 집사람이 그 신발을 내게 권했을 때 ‘이런 화려한 신발을 어떻게 신느냐’고 했었는데 지금은 가장 아끼는 신발 중 하나다.

여름에만 신는 그 신발은 평소의 내 발걸음에 특별함을 부여한다. 어쩌면 신발의 반짝이는 빛을 받아 나도 반짝일 거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반짝이는 모든 것엔 멋이 있다. 화려한 하이힐을 사랑하는 여자들을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이제 반짝이는 신발은 상자에 들어갈 때다. 상자에 넣기 전 신발을 청소하는데 상처 난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반짝이는 것들의 상처는 참 눈에 잘 들어온다. 조금씩 상처받아가며 잃어가는 반짝임이 참 아깝다.

 

 

어릴 적 난 다른 친구들에 비해 끈 매는 신을 늦게 신었었다. 주로 찍찍이 운동화를 신었었다. 

신발 끈의 멋진 매듭도 참 늦은 나이에 만들 수 있었다. 집사람이 아들에게 이것저것 이쁜 것들을 마련해주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 어려서부터 어머님이 안 계셨던 것이, 내 신발에 멋진 매듭이 없었던 한 이유인 듯하다. 학교 소풍 때였나? ‘풀어진 내 신발 끈’으로 어려워할 때, 날 위해 신발 끈을 대신 매어주며 방법을 알려줬던 친구가 있었다. 그 당시 신발 끈을 맬 줄도 모르던 내가 어떻게 끈 달린 신발을 신고 다녔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때 내 신발에 달렸던 끈은 고정만을 위해 쓰였던 거 같다.

멋스럽지 못한 그냥 꼬고 꼬아서 고정의 수단으로만 만들어진 매듭. 그래서 매듭의 모양이 그때그때 다르고 풀기도 쉽지 않은 그런 매듭. 그때 내 신발 끈을 매어주었던 그 친구가 새삼 고맙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내 신발 끈엔 기능 외에 멋까지 함께 있으니 말이다.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학창시절 내 신발은 무척 오래갔었다. 고등학생 때 반 친구가 “너는 신발을 오래 신어서 좋겠다.”라고 한 적이 있다.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던 그 시절, 부유하지 못했던 그 친구는 축구 할 때나 농구 할 때나 항상 얇은 단화를 신었었다. 운동을 좋아하던 그의 단화는 얇은 만큼 금세 닳아 망가지곤 했다. 신발이 떨어질 때마다 어려운 가정 사정 때문에 난처해하던 기억이다.

지금은 그 시절보다 물질적으로 풍부한 세상이 됐다. 이제 그는 축구 할 때는 축구화를 농구 할 때는 농구화를 신고 있을 거다. 그리고 이쁘고 튼튼한 신발을 사줄 아이도 생겼겠지.

 

그 친구와 같이했던 운동(운동이라기보다 놀이에 가까운)은 한가지뿐이다. 테니스공으로 사람을 맞추는 놀이었는데, 테니스공에 세 번인가를 맞으면 아웃되고, 상대편이 던진 공을 내가 잡으면 상대편은 점수를 잃어 아웃에 가까워지는 식이었다. 놀이의 이름은 뭐였는지 기억 안 난다.

언듯 생각하면 공으로 사람을 맞춘다는 것이 위험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이 던지는 테니스공의 강도란 살짝 아픈 정도였다. 짧은 쉬는 시간 동안 우린 잠시도 쉬지 않고 공 하나를 던지고 맞고 잡고 피하며 뛰놀았었다. (그 당시 우리 학교는 서울에서 가장 넓은 고등학교여서 뛰놀 곳이 많았다.) 난 그 놀이가 참 즐거웠었다. 아마도 짧은 그 시간 동안 내 신발은 가장 많이 닳았을 거다.

 

집사람을 만나기 전까진 내게 있던 신발은 모두 4켤레 정도였다. 구두, 운동화, 등산화, 스포츠 샌들 등으로 멋보다는 기능적으로 구성됐었다. 지금은 대충 10켤레가 넘는 신발이 있다. 새로 생긴 신발들 대부분은, 투박했던 내 삶에 멋을 더하기 위해 집사람이 마련해준 것들이다.

집사람을 만난 후론 신발을 혼자 사본 적이 없다. 집사람이란 존재가 내게서 없어진다면 난 어쩌면 끈 매는 법까지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과장에 과장을 더한 표현인가? 그렇더래도 집사람은 좋아할 거다. 그러면 됐다.^^)

내가 제일 자주 신는 신발은 트레킹화다. 신혼여행 때 신으려고 샀던 것인데 어디를 가도 몸을 사리지 않고 내 발을 지켜주며, 가볍고 안전하게 나를 바닥에 내려준다. 하지만 이제 그 트레킹화도 시간의 흔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겠지. 얼마 있으면 트레킹화를 대신할 새 신발을 장만해야 할 거 같다. 집사람에게 골라달라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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