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토양 그리고 지구의 녹색 외투라 할 수 있는 식물들 덕분에 지상에서 동물들이 살아갈 수 있다.
현대인들은 이런 사실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태양 에너지를 이용해 우리의 식량을 만들어주는 식물이 없다면, 인간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물에 대해 우리는 정말로 편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즉각적인 이용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 식물을 잘 키우고 보살핀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별로 바람직하지 않거나 관심 없는 거라면 즉시 이 식물을 없애버린다. 인간이나 가축에게 해를 끼치는 식물뿐 아니라 먹을거리를 제공해주는 식물이라고 해도 우리의 좁은 소견으로 볼 때 잘못된 시간, 잘못된 장소에 있다면 바로 제거의 표적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별로 원치 않는 식물과 연관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제거되는 식물도 있다.
식물과 대지, 식물과 식물, 식물과 동물 사이에는 절대 끊을 수 없는 친밀하고 필수적인 관계가 존재한다. 식물 역시 생명계를 구성하는 거대한 네트워크의 일부이다. 우리는 가끔 이런 관계를 교란하는 선택을 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한참 후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사려 깊게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번창하는 '잡초 제거제' 산업을 보면 이런 겸손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제초제의 치솟는 판매량과 급증하는 사용량이 오늘날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산쑥의 일종인 세이지가 번성한 미국 서부 지역에서 분별없는 생각 때문에 파괴된 풍경의 가장 비극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사람들은 넓은 지역에 자라는 세이지를 없애고 대신 여기에 초지를 만들었다. 어떤 일을 계획할 때에는 그 주변 역사와 풍토를 고려해야만 한다. 자연 식생은 그 환경을 구성하는 다양한 생물이 벌이는 상호작용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왜 이런 경관을 갖추게 되었는지, 왜 있는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마치 활짝 펼쳐진 책처럼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펼쳐진 쪽조차 읽지 않는다. 세이지는 미국 서부의 고원지대와 그 위로 솟아오른 산등성이에서 자란다. 수백만 년 전 로키 산맥의 융기로 생성된 이 지역의 기후는 극단적이다. 겨울이면 산정상에서 눈보라가 몰아쳐 초원에 눈이 높이 쌓이고, 여름이면 충분치 않은 비가 열기만 조금 식혀줄 뿐 가뭄으로 땅이 타들어가고 건조한 바람이 나뭇잎과 줄기에서 수분을 훔쳐간다.자연 식생이 진화하면서 이런 바람 부는 고지대를 서로 차지하려는 식물들은 오랜 기간 시행착오의 과정을 거쳤다. 몇 번의 시도가 차례로 실패했다. 마침내 이런 환경에 적합한 모든 조건을 갖춘 식물 한 종이 자리를 잡게 되었다. 키 작은 관목인 세이지는 산등성이와 초원에 자리 잡았는데 그 조그만 회색 잎은 수분을 훔쳐가는 바람을 막아내기에 적합했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 오랫동안 자연이 실험한 결과이며, 그렇기 때문에 서부의 넓은 초원이 세이지로 뒤덮이게 된 것이다.
식물처럼 동물 역시 환경에 맞춰 자리를 잡아나간다. 쑥과 마찬가지로 이런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한 두 종류의 동물이 나타났다. 한 종은 포유류로, 날쌔고 우아한 산양이다. 또 다른 종은 세이지뇌조(sage grouse)라는 새로, 19세기 초반 미국의 미개척지 탐사에 나섰던 유명한 모험가 루이스와 클라크는 이 새를 ‘평원의 수탉’이라 일컫기도 했다.
세이지와 뇌조는 상부상조하며 사는 듯하다. 이 새의 서식지는 세이지의 생육지와 일치하는데, 세이지가 자라는 땅이 줄어들면서 뇌조의 수 역시 급감했다. 평원에 사는 새에게 세이지는 모든 것들 공급해준다. 산기슭에서 자라는 키 작은 세이지는 새 둥지와 어린 새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었고, 조금 더 무성한 세이지 관목숲은 새들이 놀거나 쉴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또 세이지는 언제나 새들에게 먹이를 공급해주었다. 뇌조 역시 세이지에게 큰 도움을 준다. 이 관계는 쌍방적이다.
뇌조의 짝짓기는 볼 만한 광경인데, 이때 뇌조는 세이지가 뿌리내린 토양과 그 주변 일대를 파헤쳐서 세이지 관목 밑에서 풀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다.
사냥 역시 세이지의 생태에 맞춰 적응해갔다. 산양은 고원에서 가장 중요한 동물인데, 여름에는 산 위에서 지내다가 겨울에 눈이 내리면 좀 더 낮은 지대로 내려온다. 이곳에서 자라는 세이지는 산양이 겨울을 나는 동안 좋은 먹이가 된다. 겨울이 되면 다른 잎은 모두 떨어지지만 상록수인 세이지의 회녹색 잎(쌉싸래한 맛에 향기가 나며 단백질, 지방, 필수 무기질이 풍부하다.)은 무성한 관목 줄기에 그대로 달려 있다. 눈이 높이 쌓여도 세이지의 윗부분은 눈 밖으로 드라나며 또 산양이 앞발의 뾰족한 발굽으로 눈을 헤쳐서 그 잎을 찾아낼 수도 있다. 뇌조 역시 바위 절벽에서 자라거나 산양이 헤쳐놓은 눈 속의 세이지를 먹기도 한다.
다른 생물들 역시 세이지에 의존한다. 뮬사습(노래시슴)도 자주 세이지를 뜯어먹는다. 겨울을 힘들게 나야 하는 가축들에게 세이지는 절대적인 생존 수단이다. 양들은 커다란 세이지 덤불을 뜯어먹으며 겨울을 난다. 세이지는 알팔파보다 훨씬 더 영양분이 풍부해서 양들은 1년 중 절반가량 세이지를 주식으로 한다.
높은 지대에 자리 잡은 고원, 세이지가 자라는 보랏빛 황무지, 재빨리 움직이는 야생 산양과 뇌조는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자연 체계를 구축했다. 하지만 이 말이 지금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인간이 자연을 개발한 이후에는 광대한 지역에 결쳐 더욱 그렇다. 진보라는 이름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지역개발 담당자들은 더 많은 목초지를 요구하는 탐욕스러운 목축업자들을 만족시킬 뿐이다.
그들이 말하는 목초지란 세이지가 나지 않는 땅을 의미한다. 자연이 선택한 땅에서는 목초와 세이지가 함께 자라지만 사람들은 세이지를 없애버린 완전한 목초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태의 목초지로 만드는 것이 안정적이고 바람직한 목표인지 질문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자연은 좀 다른 대답을 내놓는다. 비가 별로 내리지 않는 지역인지라 목초가 자라기에는 강수량이 충분치 않다. 그렇지만 세이지가 자라는 그늘 밑에서는 번치그래스라는 여러해살이 볏과 초본식물이 자랄 수 있다. 그런데도 상당한 기간 동안 세이지 박멸 사업이 진행되었다. 몇몇 정부기관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목초 종자뿐 아니라 수확, 경작, 파종에 필요한 각종 농기구 시장을 넓히기 위해 산업계 역시 열성적으로 뛰어들었다. 이를 위해 새롭게 추가된 무기가 바로 화학 제초제였다. 수백만 에이커의 세이지 초지에 매년 제초제가 뿌려졌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세이지를 모두 없애버리고 목초 종자를 뿌리면 더욱 성공적이라는기대는 헛물에 지나지 않았다.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 따르면 이런 지역에서는 수분을 충분하게 함유한 세이지를 제거하고 목초만 심는 것보다 세이지와 함께 심거나 세이지 밑에 심을 때 오히려 목초가 더 잘 자란다고 한다.
인위적 사업을 실시하면 즉각적인 목표는 달성할지 몰라도, 잘 짜여있던 생태계 네트워크에 문제가 생긴다. 세이지가 사라지자 산양과 뇌조도 더불어 사라졌다. 사슴도 고난을 겪고 야생의 자연계가 무너져 내리면서 땅도 더욱 척박해져갔다. 목초지를 만들어주면 가축들도 더 많은 혜낵을 누리리라 생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비록 여름에는 푸른 목초가 풍성하지만, 세이지와 비터브러시 등 야생식물이 사라진 뒤 한겨울 눈보라 속에서 가축들이 굶주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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