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을 그리겠다며 파리로 떠났던 누님이 3개월 만에 돌아왔습니다.
집사람을 보러 집으로 온다기에, 전 둘만의 편한 대화를 위해 집을 나와 이리저리 떠돌았습니다. 은행일도 보고 근처 커피점에서 익숙하지 않은 모습으로 글도 쓰고, 오랜만에 좋아하는 국밥집을 혼자 들르기도 했습니다.
편한 대화를 위해 집을 나왔지만, 누님을 못 보면 왠지 서운할 거 같단 생각에 “아직은 집에 있겠지?”하며 집으로 향합니다. 다행히 아직 저녁식사 중 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마주한 제 앞에서 누님은 제 아들을 무릎에 앉혀 두 팔을 잡고 “텔~레비젼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에~ 정말 좋겠네~” 하며 율동을 합니다. 예전 신생아 보호시설에서 봉사했던 누님은 아이들과 아이같이 놀 줄 압니다.
프리랜서 활동을 하며 알게 된 누님은, 일하는 공간을 떠나 사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몇 안 되는 사람이며, 매우 독특한 분입니다. 누님은 주변을 보며 생각하는 방식이 보통과는 다른 거 같습니다. 덕분에 집사람과 저도 일상과 다른 시간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습니다.
누님이 마주 앉아있는 제게 전시회를 하겠답니다. 작은 박스를 엽니다. 박스에서 명함만한 작은 그림들이 나와 바닥에 놓여집니다. 내집 거실 바닥에서 즉석 전시회가 열립니다.
‘작은 전시회’란 이름의 간판도 준비하셨습니다.
파리의 아뜰리에에서 준 쿠폰을 이용한 그림들입니다. 쿠폰을 다 사용하고 남은 쿠폰 틀에 모델들을 하나하나 옮겼습니다. 아뜰리에 마지막 날, 친구들에게 전시회를 열었답니다. 장소는 드로잉북 위, 나무의자 위. 지금은 아들의 유아매트 위입니다.
눈앞에 놓여진 그림들에 뭐라 말할 수 없는 저인지라, 눈은 좋아합니다만 말은 없습니다.
좋아 보입니다. 그림들도, 그림이 만들어진 가보지 못한 그 장소도, 전시회 모습도...
아뜰리에 모델들이 포즈를 취하는 공간을 찍은 사진이랍니다. 아뜰리에 친구들에게 선물로 보내려고 준비했다는군요. 집사람은 누님의 사진들을 볼 때면, 느껴지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 합니다. 동감합니다.
누님은 전시회를 열고, 짧은 파리 얘기를 들려준 후 준비단계 없이 가볍게, 뭔가 떠나기 위해선 중간 단계가 있을 거 같은데 뭔가가 빠진 거처럼, 그러나 자연스럽게 일어나 “안녕~”하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뭔가 더 들려주실 것이 있었는데 못 들은 거 같아 아쉬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하는 공간은 어느 정도의 보편적 틀이란 게 있습니다. 이 틀이란 것에 위계와 경쟁이란 특성이 따라다니면 그 틀엔 빈 공간이 적어지게 되며 헐거움이란 용인치 않는 분위기로 변합니다. 누님은 이런 것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누님은 헐거움이란 공간을 필요로 합니다. 언젠가 아직은 떠날 수 없는 틀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누님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누님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얘기들이 좋습니다. 좋은 얘기들을 자랑하듯 많은 분께 알려드리려 했더니 “언니가 싫어할 거야”라고 집사람이 그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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