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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앨범

세면대와 딸기

by 시선과느낌 2013. 2. 23.

 

집에 들어가는 길에 1층 수선집 남편 분을 만났다. “안녕하세요.”라고 가볍게 인사 후 집으로 들어가는데, 집 욕실의 세면대 생각이 났다. 얼마 전에 온수의 호수가 구멍이 난 상태였는데 세면대의 이상한 구조 때문에 수리를 못 하고 있었다. 수선집 남편 분이 건축 설비 관련 일을 하신다는 것이 떠올라 방법을 아실까 해서 다시 수선집을 들렀다. 나의 이러저러한 물음에 그 분은 “이러저러한 공구로 이러저러하면 간단하게 고칠 수 있어.”라고 하신다. 집에 있는 공구로 기를 쓰고 고치려 했지만 못 고친 상태에서,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 것에 다시 시도를 해보겠다며 집으로 돌아왔다. 교체할 호스를 내일 사서 고쳐봐야겠다 생각하고 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수선집 남편 분이다. 현관문을 여니 차에 남는 호스가 하나 있어 가져오셨단다. 손엔 호스 외에 작은 공구도 들려있다. 호스 외에 수리도 해주시겠다는 의미로 고장 난 곳이 어디냐며, 우리 집 욕실 방향을 보신다.

 

수선집 남편 분은 모자를 뒤로 돌려쓰시고 공구로 호스의 잠긴 곳을 풀려 하신다. 하지만 나와 같이, 세면대의 구조 때문에 힘겨워하신다. 끝내 세면대를 욕실 벽에서 뜯어내신다. 벽에서 분리된 세면대는 욕실바닥에 뒤집혀 놓이며 구조상의 문제가 사라진다. 이제 쉽게 구멍 난 호스를 교체하시고 세면대를 다시 벽에 고정하신다.

 

수리 후 나에게 무엇을 주긴 하였으나 받진 않겠다는 의지로 급하게 우리 집을 나가신다. 나는 뒤따르며 감사하단 말을 몇 번이고 드린다.

 

갑작스러운 이런 상황을 집사람에게 설명하고, 감사하단 인사로는 부족한 거 같아 냉장고의 과일을 더하려 했으나 과일은 없다. 더하는 과일은 내일 저녁으로 미루기로 했다.

 

잠시 후 감사의 마음이 하루 동안 바랠까 싶어, 서둘러 슈퍼마켓을 들러 딸기를 사고, 씻고, 꼭지를 칼로 다듬고 유리볼을 찾아 담아 1층 수선집을 다시 찾았다. 남편 분은 안 계시고 수선집 사장님만 계신다. 고마운 마음에 딸기를 가져왔다고 하니, 얼마 전 돌떡(내 아들의 돌떡)을 그냥 받아먹어서 미안한 마음에 그냥 고쳐주라고 하셨단다.

 

집으로 올라오는 계단에서 난 잠시 두 분의 대화를 상상한다.

  • 수선집 사장님 : 윗집에서 딸기 가져왔어요. 당신 덕에 딸기도 얻어 먹고 좋네요.^^
  • 남편 분 : 그래? 윗집에서 딸기를 가져왔어? (어깨를 으쓱하며...)

 

각박한 서울이라 해도 가끔 이웃의 정을 ‘느낄 때’가 있다. 내 무엇을 ‘나눈다’는 행동을 시작했을 때’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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