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집사람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줬던 만년필이다. “더 좋은 것으로 해주고 싶었는데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것으로 준비했다.” 했었다. 고맙게 받긴 했었는데, 내가 잘 사용치 않을 것만 같은 마음에 작은 아쉬움이 섞여 있었다. 나 같은 악필엔 만년필은 어울리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거 같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어느 날 만년필을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병 잉크를 사고 잉크를 팬에 충전해 제일 먼저 긁적이던 것은 내 ‘싸인’이었다. 멋들어지게 ‘사삭’ 하며 싸인하는 영상을 자주 봐서 그런지 만년필로는 꼭 싸인을 해야만 할 거 같다.
평소 사용하던 작고 가벼운 노트는 만년필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잉크가 번지고 얇은 종이는 잉크를 다 받아들이지 못해 뒷면까지 사용했다. 그래서 지금은 아들 돌사진집을 만들 때 제본 테스트로 만들었던 것을 노트로 사용 중이다. 제본에 사용한 풀을 종이가 먹어 좀 울퉁불퉁하지만 넓고 하얗고 두꺼운 종이는 만년필의 잉크를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다.
만년필을 사용하면서 좋은 것은 종이와 펜촉이 스치는 ‘삭~삭~’하는 소리다. 연필이 만들어내는 소리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이따금 쉴 때면 집 근처 커피점에 혼자 간다. 그곳에서 진한 초코케익과 커피를 주문해 놓고 ‘삭~삭~’ 소리 내며 내 생각을 하얀 종이에 옮기고 정리하는 그 시간이 좋다.
"만년필을 많이 쓰다 보면 내 정리 안 되는 글씨체도 정리될까?"
"그래도 몇십 년을 같이하던 내 글씨가 쉽사리 떠나지는 않겠지?"
.
.
.
아! 생각났다! 만년필로 그린 어떤 그림을 보고 나도 만년필로 그림 그리고 싶다고 생각했었다.(생각은 내 머리를 떠났어도 어딘가에 보관되어졌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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