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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손님과 올 손님의 마음을 배려하는 오랜만에 동내 맛집 평양냉면집을 찾았다. 코로나 이후로 가격이 많이 높아지는 바람에 선뜻 찾진 못하지만, 오늘은 평양냉면의 슴슴한 매력을 잊을까 싶어 들렀다. 식당 안엔 슴슴한 이 매력을 모르는 젊음은 보이지 않는다. 나와 집사람이 가장 어린 듯. 시원한 평양냉면 그릇의 밑바닥을 확인 후 일어서는데 옆좌석에 있는 푯말이 보인다. ‘배려석’ ‘예약석’이란 말보다 설득력 있고 거부감 없는 표현이다. 온 손님과 올 손님 모두를 생각해서 만들어진 듯한 푯말의 자리가 평양냉면의 시원한 국물과 같이 마음에 든다. 2023. 6. 23.
레고 공룡 아들과 나의 한가한 시간이 만나게 된 어느 날이었다. 아들 방에서 자잘하고 딱딱한 것들의 뒤섞임 소리가 난다. 소리의 모양새는 서리태에서 쭉정이나 못난 것들을 골라내는 듯하다. 소리의 근원을 찾아 아들 방으로 향하니, 아들 침대 위엔 온통 레고들이다. 그 위에서 아들은 손으로 레고들을 이리 치우고 저리 치우며 뭔가를 찾고 있다. 수많은 레고 중 원하는 것은 몇 개 없는지라 저도 힘든지 도와달란다. 아이가 한가한 시간에 도움을 청하니 싫다고는 할 수 없다. 내 손은 아들 손에 비해 합리적으로 찾음을 시전하지만, 수많은 레고 앞에선 합리적이고 뭐고 눈만 빠질 뿐이다. 많은 손놀림 끝에 우리는 원하는 것을 찾았지만, 이 상태로는 아들의 요구는 계속될 거라 예상된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어 집사람과 아들을 데리.. 2023. 1. 8.
마무리와 시작은 ‘느긋함’과 ‘맛있음’으로 역시 마무리와 시작의 시간은 느긋한 것이 맞다. 느긋한 여유로움에 맛난 것을 놓고 거기서 오는 흥을 증폭시켜주는 술 한잔. 전날 장 봐온 연어와 가리비를 청주와 소금으로 정리해준다. 2022년은 이 두 가지 음식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정리된 것을 찌고 썰어 먹기 좋게 식탁에 둔다. 연어의 맛은 머리가 기억하고 있어 궁금하지 않지만, 가리비의 맛은 궁금하다. 집사람 생일 때 먹었던 토마토 스튜의 가리비를 아들이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라 준비된 것인데, 참 달고 맛나 특별한 날에 어울리는 음식 목록에 추가 기록된다. 아들이 자기는 연어회를 못 먹는다면서 기억에 있던 연어스테이크를 몇 번이고 얘기했었다. 횟감용 연어로 조리된 연어스테이크는 맛은 연어이나 모양은 스테이크가 아니다. 주연이 빛나려면 그에 못지않은.. 2023. 1. 2.
맛있는 크리스마스 바쁜 일정들이 끝나고 귀찮은 몸을 움직여 헬스클럽에 간다. 이번 운동 부위는 하체와 어깨. 집에서 멀지만 넓은 헬스장을 찾아 옮긴 지 2주가 넘었나 보다. 이제 기구와 환경에 적응도 되고 흐릿했던 열의도 돌아오는 듯. 헬스장에서의 시간은 언제나 빠르다. 느린 적이 없다. 어느새 운동시간이 1시간을 넘고 ‘이것만, 이것만’ 하며 10분, 20분을 또 넘긴다. 워밍업용 런닝, 웨이트, 스트레칭, 샤워를 다 하고 나면 2시간을 훌쩍 넘기는데, 저녁 시간에 늦어 집사람한테 잔소리 듣지 않으려면 마무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집에 도착하니 커튼에 이미 크리스마스 풍선이 걸려있다. 아들이 조금 도와줬다고는 하는데, 풍선 불고 다느라 애 좀 썼겠다. 늦지 않아 다행이다. 올해 새로 장만한 자그마한 크리스마스 트리. 집사.. 2022. 12. 26.
캠핑팩(캠핑 준비물, 캠핑 장비, 캠핑 용품) 쇠, 공구, 기계 등을 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편이다. 움직이는 구조와 구조 사이에 생기는 유격이 적으면 적을수록 희열이 느껴진다. 아마도 전공 또는 아버지의 영향 때문인 것 같다. 예전 기계나 공구를 정비할 때면, 차갑고 단단한 철에서 ‘다음엔 더 완성된 구조물을 만들고 있겠지?’란 희망적인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었는데, 이젠 컴퓨터 앞에 앉아 실체를 접하기 힘든 것만 만들고 있는지라 이젠 그런 느낌을 받는 일이 흔치 않다. 손이 닿을 때마다 완성에 가까워지는 단순한 반복적 행동은 흐트러졌던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정리해준다. 목수셨던 아버지께서 마모된 톱날을 정비하는 모습을 집에서 가끔 보곤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정리되는 톱날과 같이 마음도 정리하신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오랜만에 쇠라는 것을 정비.. 2022. 11. 11.
레오폴드 기계식 키보드 FC980MBT PD 그레이블루 한글 적축 일단 박스 구경부터 박스를 열면 제품 설명서와 키보드, 투명 보호케이스, 건전지 2개가 보입니다. 안에 있던 C to USB 타입 케이블과 AAA타입 건전지 2개, 여분의 키캡입니다. C to USB 타입 케이블은 유선 연결용입니다.(충전용 아님) FC980MBT PD는 전원을 건전지로 사용합니다. 내장형 배터리가 아닌 점이 구입을 망설이게 하는 요소중 하나였는데, 내장 배터리 고장으로 키보드를 수리하거나 교체할 일은 없겠다 싶어 마음을 돌렸습니다. 여분의 키캡과 키캡 리무버입니다. alt, window, ctrl 키 위치를 바꿔서 사용 중인 저에겐 반가운 구성품입니다. 그나저나 키캡 리무버는 좀 더 좋은 것으로 주지... 키캡 리무버는 이런 형태의 것이 좋습니다. 사용도 편하고 키캡에 스크래치도 안 나.. 2022. 3. 21.
애니메이션 추천-2 별첨은 개인적인 취향에서 온 것입니다. 참고만 하세요.^^ 마법의 세계 녹타나 판타지 | 80분 | 2007년 작 | 감독 : 아드리아 가르시아, 빅터 말도나도 | ★★★ 공각기동대 이노센스 SF | 99분 | 2004년 작 | 감독 : 오시이 마모루 | 12세 관람가 | ★★★★★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어드벤처 드라마 | 91분 | 2004년 작 | 감독 : 신카이 마코토 |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SF | 116분 | 1984년 작 | 감독 : 미야자키 하야오 | ★★★★★ 카우보이 비밥 천국의 문 2001년 작 | 116분 | 감독 : 와타나베 신이치로 | 음악 : 칸노 요코 | ★★★★★★★★★★ 마크로스 프런티어 SF | 2008년 작 | 25화 | 감독 : 카와모리 쇼지, 키쿠치 야.. 2022. 2. 5.
애니메이션 추천-1 우린 누구와의 소통 속에서 나와 같음을 느낄 때 반가움과 동질감을 느끼죠. 그래서 “누군가 나와 같은”이란 생각에 제가 그동안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을 소개하려해요. 소개순번 없이 무작위로 소개하겠습니다. 기동전사 건담 시드 2002년 작 | 총 50편 | ★★★ (개인적인 취향에서 오는 별첨입니다.) 처음 그림부터 강렬합니다. 먼저 이야기의 이해를 위해 용어설명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 코디네이터 :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인류 - 네츄럴 : 유전자 조작을 받지 않은 인류 이야기는 새로운 인류(코디네이터)가 나타나며 생긴 구인류(네츄럴)와의 신체적, 능력적인 차이에서 오는 격차가 코디네이터와 내츄럴의 대립이라는 새로운 인종차별을 나았는데 그러한 대립이 전쟁으로 발전됨을 배경으로 합니다. 자세한 이야기.. 2022. 2. 5.
화분에 물주는 법 고기 보니 맛나게 보이네. 잘 먹을게~^^ 그리고 화분 얘기인데... 화분에 물 줄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주면 안 돼. 골고루 퍼트리면서 줘야지. 안 그러면 땅이 파이거나 물을 다 담을 수 없어. 사랑도 마찬가지야 한동안 못 줬다고 한꺼번에 많은 걸 주면, 다 담지도 못하고 파일 수가 있어. 물을 줄 때는 꾸준히, 잔잔하고 살살 줘. 그러면 잘 자랄 거야.^^ 잘 자고 수고했어. 2011년 어느 날 소중한 사람의 소중한 사람을 생각하며... 2021. 6. 9.
빅토리녹스의 톱니형 칼 잠들지 않는 새벽... 맥주를 마시려, 잠든 집사람과 아들 몰래 침실을 빠져나왔다. 안주는 스모크 치즈. 스모크 치즈를 자르는 녀석은 언제나 빅토리녹스의 톱니형 칼. 이 톱니형 칼은 치즈의 아픔을 톱니 사이로 툴툴 털어놓으며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칼과 같이 치즈의 진득한 아픔에 뒤돌아보거나 머뭇거리는 현상은 느낄 수 없다. 이 녀석은 잔인하게 임무를 완수한다. 그렇기 때문에 치즈엔 언제나 이 녀석이 쓰이나 보다. 2021. 6. 9.
피는 꽃 피는 꽃...기억에 없는 어느 시간에 알게 된, 이 글이 참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의 핸드폰 번호 이름을 이 글로 저장했다. 연애시절 ‘피는 꽃’이란 이름으로 내 핸드폰에 저장되었던 사람이, 지금은 내 반려자가 되어있다. 이젠 내 곁이 오래 머물러 있었고, 자주 접하는 이름이어서 그런지 이 글을 알게 됐을 때의 느낌은 무디고 희미해졌다. 이 무디고 희미해진 느낌이 어느샌가 내 몸에 베어들었었음을 느낄 때가 있다.베어들었던 그 느낌이 고개를 쳐들어 내 기억을 바라볼 때면 그 기억을 향해 웃게 된다.“그래... 이런 느낌으로 널 좋아했었지...”하며... 부부란 관계는 오래돼 무디고 희미해진 이 글과 같단 생각이 든다. “그래... 이래서 같이 있고 싶었었지... 이래서 같이 있는 걸 좋아하나 보다...” .. 2021. 6. 9.
내 몸은 비커 (Beaker)와 같습니다. 내 몸은 투명한 비커(Beaker)와 같습니다. 사람들은 날 부를 때 비커가 아닌, 담겨 있는 것의 이름으로 부릅니다. 내 몸은 색상 없이 투명합니다. 무엇을 담으면 담긴 것의 색상이 내가 됩니다. 내 몸은 선호하는 색상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선호하는 색상을 담기도 합니다. 그러면 어색한 색상 조합이 되곤 합니다. 하지만 기분은 좋습니다. 내 투명한 몸엔 흰색 눈금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얼마만큼 담겨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눈금은 머리끝까지 표시되어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듯합니다. 내 몸은 매일매일 담고 버리고를 반복합니다. 멋있는 조합을 만들고 싶어, 찾고 고르고 하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무엇이 멋진 것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래도 찾다 보면.. 2021. 6. 9.
헐거운 시간 헐거움 없이 짜여진 시간을 지나 그 시간의 끝을 확인하고, 늦은 새벽 집으로 돌아온다. 2,3시간 후면 아침이겠지만, 그래도 언제나처럼 집에 들어서는 내 손엔 술 한 병이 들려있다. 모두가 잠든 밤 나만의 공간을 마련하고 조여져 있던, 그 시간을 보상하려는 듯 술을 따른다. 보상의 횟수가 늘수록 빈틈없이 조여져 뾰족했던 그 시간은 헐거워지고 아팠던 시간은 무뎌진다. 보상은 아직 남아있는데, 밖은 밝아져 온다. 다시 눈을 뜨면 지난밤의 보상으로 중화되어, 부드러워진 그 시간만이 남겨져 있기를 바란다. 2021. 6. 9.
주차장 학생 담배 해가 진 후 집으로 들어서려는데, 주차장 저 끝에서 대화 중인 한 무리 사람들이 보인다. 자세히 보니 4명 정도의 중고등학생들이다. 그냥 들어갈까 하다가 “거기서 뭐 하니?” 하며 학생들에게 다가간다. 담배 연기가 느껴지며 난 얼굴을 찌푸린다. 한 두 명의 학생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 같다. 좀 더 다가가니 학생들이 담배를 감춘다. 준비하고 있던 것 마냥, 그들에 대한 거부감이 이내 나를 감싼다. “다른 곳으로 가”라며 난 손짓한다. ‘훠이~’ 하며 논에 있는 귀찮은 새를 쫓듯이... 학생들이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고는 내게서 멀어진다. 멀어져가는 그들의 등을 확인하고 나는 집으로 들어선다. 그런데 왠지 집으로 들어서는 발걸음이 시원치 않다. 옷을 갈아입고 샤워를 하는 동안 내내 마음이 안 좋다. ‘그런.. 2021. 6. 8.
배달 오토바이 거울을 보며 귀 쪽 머리카락을 넘기는데 흰 머리카락이 빛이라도 발하듯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난 바로 집사람에게 달려가 도움을 청한다. “도와줘~~~!!!” . . . 의자에 앉아 집사람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다. 집사람은 흰 머리를 잘 뽑는다. 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집사람은 내 뒤에서 머리카락을 뒤적이며, 분리돼 있던 소소한 하루를 얘기한다. 창밖에서 우리의 대화를 가르는 소음이 배달 오토바이와 함께 빠르게 지나간다. 저 오토바이 소리는 언제나 거칠다. 귀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거칠게 만든다. 배달 오토바이들의 엔진 소리는 아스팔트 노면과 같다. 조밀하나 일정치 않고 만지면 거침이 느껴지는 소리. 우리는 대화를 방해하는 소음을 욕한다. . . . 나도 가끔 저 오토바이들로부터 배달을 받.. 2021. 6. 7.
치자꽃 오후 외출 때만 해도 부풀어 오른 꽃망울만 보았는데, 돌아와 보니 하얀 낮을 대신해 하얗게 피어올랐구나. 게으른 이 때문에 좋은 흙을 늦게 만나 꽃이 늦나 했는데, 피고 나니 기쁨은 때와 상관없구나. 이제 시작이니 하얀 기쁨이 넘쳐나겠지. 내게 와서 2년째지? 겨울에 거칠어지던 널 보며 걱정했던 날 기억한다. 환해진 지금의 널 보니 조금 널 알겠다. 2021. 6. 7.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녀는 음악이 눈 덮인 웅장한 침묵의 들판에 활짝 핀 한 송이 장미와 흡사했던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시대를 생각했다. 언제였는지 기억에 없는 그 시간에 아이폰의 음악이 너무나 익숙해 감정의 동요가 생겨나지 않았던 그때쯤 읽었던 글. 넘쳐날 정도로 많다면 뭐든 소음과 같은 것이 될 수도 있겠구나 했었다. 이제는 고요는 소중하고 값지다. 이 시대엔 그런 것으로 돼버렸다. 2018. 2. 7.
주차금지 사실이던 사실이 아니던 만들어진 글은 제구실을 하는 듯. 2017.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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